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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202) |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청하서원입니다.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중인1길 272번지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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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와 이전 이름 완산(完山)에서 '전(全)'과 '완(完)'은 '온전하다'는 뜻의 순우리말 '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마한 시대의 원산(圓山)에서 원(圓)을 '온'의 차자(借字)로 보아 이를 전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백제 시대에는 완산(完山)이라고 불렀으며, 전주라는 지명은 남북국 시대인 757년(경덕왕 16년)에 지명 한화(漢化) 정책에 따라 '완(完)'을 의역해 완산주(完山州)를 전주(全州)로 고치고 1주, 1소경, 10군, 31현을 거느리게 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주는 '비사벌'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삼국사기》의 지리지 백제편에서 완산의 별칭이 '비사벌'이라고 주(註)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은 책 지리지 신라 양주편에는 비사벌이 화왕군(현 경상남도 창녕군)의 원래 이름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비사벌에 설치됐던 하주정(下州停)과 이를 폐지하고 설치된 완산정(完山停)을 헷갈려 잘못 기록했다고 보는 것이 통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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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영토였으며, 삼국시대에 백제의 비사벌 또는 비자화로서 555년(위덕왕 2)에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었다가 565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완산주를 다시 설치하고, 757년(경덕왕 16)에 전주(全州)로 개칭되어 행정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이후 전주는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고장이 되었습니다.
고려시대 1022년에 전주목으로 개칭되어 1곳의 속군과 11곳의 속현을 포함하는 큰 고을이 되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된 후 1392년(태조 1)에 전주이씨의 본향지라 하여 완산부유수(完山府留守)로 승격되었으며, 1403년(태종 3)에 전주부로 개칭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전주의 별호는 완산(完山)·견성(甄城)이었습니다. 1935년에 전주면이 부로 승격되어 독립하고 1949년에 전주시로 개칭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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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청하서원(淸河書院)은 조선 순조 때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수홍(鄭守弘) · 정곤(鄭坤) · 박동현(朴東顯) · 박동립(朴東立)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구이면 학천리에 학천사(鶴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습니다.
그 뒤 현 소재지에 청하서원을 창건하고 박동립과 박동현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함과 동시에 유조(柳組)를 추가 배향하였습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이듬해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왔습니다.
그 뒤 1966년 복원과 동시에 김장생(金長生)을 주벽(主壁)으로 추가 봉안하였습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내신문(內神門), 3칸의 강당, 고사(雇舍), 홍살문〔紅箭門〕 등이 있습니다. 사우에는 김장생 · 박동립 · 유조 · 박동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고사는 서원관리자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이 서원에서는 매월 3월 초정(初丁 : 첫 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유물로는『전북지(全北誌)』 4책 등 100여 종의 문헌이 있으며, 재산으로는 대지 1,000여 평, 전답 3,000여 평, 임야 100정보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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