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145

인권누리 웹진 제60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62)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관성묘(關聖廟)입니다. 위치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159-9 번지에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는 신의의 상징으로 중국에서는 왕으로 추증되어 신성시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초부터 관성 혹은 관왕묘를 건립하여 일반 서민에까지도 그 신앙이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임진·정유의 왜란 때에 명나라 군사들에 의해 관왕묘가 건립되었습니다. 1598년(선조 31) 처음으로 서울 숭례문 밖에 남관왕묘가 건립되었습니다. 『증보문헌비고』 권61 예고(禮考)에 따르면, 임진·정유의 난에 전투가 있을 때 자주 관왕의 영혼이 나타나 신병(神兵)이 명나라 군사를 도왔다고 했는데, 이것을 보면 명나라의 장수들이 관왕묘를 건립하는 ..

인권누리 웹진 제59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61)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정읍 피향정입니다. 위치는 전북 정읍시 태인면 태산로 2951 번지에 있습니다. 호남제일문은 전주 풍남문입니다. 그러면 호남 제일의 정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은 바로 정읍 피향정(井邑 披香亭)입니다. 피향정이란 향국(香國)을 둘로 나누었다는 의미로, 동서 양쪽에 파놓은 누정의 상하에는 상연지제(上蓮池堤)와 하연지제(下蓮池堤)의 두 연지(蓮池)가 있어 여름에는 연꽃이 만발하여 향기가 누정의 주위에 가득 차므로, 이를 뜻하여 피향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피향정은 원래 신라 헌강왕대(857~860 재위)에 고운 최치원(崔致遠) 선생이 태인(泰仁)의 현감으로 있을 때 세운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지은 시기는 ..

인권누리 웹진 제58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60)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조성만 통일열사 추모비입니다. 위치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계룡산길 88번지 해성고등학교 정문 입구에 있습니다.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이 땅의 민중이 해방되고 이 땅의 허리가 이어지고 이 땅에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한 알량한 희망, 사랑 때문이다.” - 1988년 3월 조성만 일기 중에서 1964년 12월 13일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용암리 126번지에서 부친 조찬배씨와 모친 김복성씨의 차남으로 태어난 조성만은 전북 김제시의 용암초등학교를 마치고 전주 서중학교와 해성고등학교를 거쳐 1984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화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

인권누리 웹진 제56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8)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남고산성, 남고사입니다. 위치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641에 있습니다. 남고산성은 사적 제29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남고산성은 전주 남쪽에 있는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 쌓은 산성입니다. 남동쪽으로는 남원·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중요한 곳을 지키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내려다 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전망이 아주 좋고 전주를 다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전주 남고산성(全州 南固山城)은 백제의 성곽입니다. 고덕산 자락을 따라 쌓은 이 산성은 고덕산성으로도 부르며, 후백제의 견훤이 도성인 전주의 방어를 위해 쌓았다 하여 견훤성이라고도 합니다. 현존하는 성벽은 임진왜란 때 왜군을 막기 위해 쌓..

인권누리 웹진 제55호 전북의 인권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7)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오목대, 이목대입니다. 오목대 위치는 전북 전주시 완산구 기린대로 55 입니다. 이목대는 전주시 완산구 자만동2길 5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주는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풍패지향((豐沛之鄕)으로 불리웁니다. 풍패란 중국 한나라 유방의 고향을 지칭합니다. 전주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었음을 말해주며, 이를 입증하는 여러 유적지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전주는 조선 초기부터 왕조에서 존귀한 곳으로 여겨져서 1410년 (태종11)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전각인 어용전을 경주·평양과 더불어 전주에도 지었고, 이중 전주의 전각은 세종대에 이르러 경기전(慶基殿)..

인권누리 웹진 제54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6)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고창읍성 입니다. 위치는 전북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 9번지에 있습니다. 고창은 우리나라에서 군 단위로는 최대의 고인돌 밀집지역입니다. 고창읍성(모양성)이 있는 고창은 삼한시대인 마한의 54개 소국 가운데 "모로비리국"의 시초로 열리기 시작, 백제 때에는 "모량부리현" 또는 "모양현"으로 불렸고 고려시대 이래 "고창현"으로 불렸습니다. 고창은 방장산을 등허리에 안고, 서해에 연해지면서 자리한 고을터입니다. 특히 고창은 전북의 삼신산 중 하나인 방장산 여맥이 이어져 일으켜 세운 곳입니다. 고창은 풍수지리학상, 오행에 적합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드문 지역으로 동쪽과 남쪽이 높은 반면 서북쪽이 낮게 형성되어 통풍과 햇빛이 골고루 퍼져 농작물 ..

인권누리 웹진 제53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5)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전주 황극단입니다. 위치는 전북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1가 전북독립운동추념탑 일원에 있습니다. 황극단(皇極壇)은 고종황제와 독립운동가들을 모신 곳입니다. 원형의 단으로 전주 어린이회관 부근으로 2022년에 옮겨 조성한 유적입니다. 한가운데에는 고종황제의 비가 있고, 빙 둘러서 임실출신 의병장 이석용 순국비, 백범 김구선생비, 순국 5열사비(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이준, 백정기), 3.1 만세운동 대표 33인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5개의 비 둘레에 돌기둥으로 원형의 울타리를 둘렀습니다. 황극은 『서경』에 나오는 말로 ‘통치자가 훌륭한 정치의 도리를 정립한다[皇建其有極]’는 의미입니다. 정치적 의미를 떠나서 커다란[皇] 중심[표준..

인권누리 웹진 제52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4)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익산 숭림사입니다. 위치는 전북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입니다. 익산시 함라산에 가면 숭림사가 있습니다. 함라산은 조선시대 함라현의 별호인 함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숭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경덕왕(재위:742∼765) 때 진표(眞表)스님이 창건하였습니다. 일설에는 1345년(고려 충목왕 1)에 창건했다고도 하며, 절 이름은 달마가 숭산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동안 벽을 바라보며 좌선한 것을 기리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에는 보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전소되었습니다. 10년 뒤에 우화루(雨花樓)만을 중건한 채 뚜렷한..

인권누리 웹진 제51호 전북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3)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김제 수류성당입니다. 위치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수류로 643번지 입니다. 수류성당은 1888년 6월 전라도 지역으로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M. E. P.)의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요셉) 신부가 고산 빼재공소(현 전북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하면서 신자들을 찾아 순방하다가 1889년 5월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J. Blanc, 白圭三 요한) 주교의 허락 아래 자신의 거처를 금구현의 배재(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로 이전함으로써 ‘배재성당’으로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베르모렐 신부가 1893년 4월 서울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전임되면서 조조(M. Jozeau, 趙得夏 모이세)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인권누리 웹진 제49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1)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여산 숲정이 성지입니다. 위치는 익산시 여산면 영전길 14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북에는 익산시 여산 숲정이와 전주 숲정이가 있습니다. 천주교전주교구의 제2성지라고 불리는 여산(礪山)은 천주교 전래가 다른 지역보다 앞섰고 또한 박해의 역사가 아주 깊습니다. 1868년에 무진년에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여산군의 속읍인 고산, 진산, 금산 등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형장인 숲정이와 장터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여산의 순교 사적지로는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던 ‘여산 동헌’, 동헌 옆의 ‘옥터’와 신자들이 백지사 형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동헌 앞마당의 ‘백지사터’, ‘배다리’, ‘뒷말 교수형터’, 순교자들이 참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서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