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148

인권누리 웹진 제52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4)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익산 숭림사입니다. 위치는 전북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입니다. 익산시 함라산에 가면 숭림사가 있습니다. 함라산은 조선시대 함라현의 별호인 함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숭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입니다. 신라 경덕왕(재위:742∼765) 때 진표(眞表)스님이 창건하였습니다. 일설에는 1345년(고려 충목왕 1)에 창건했다고도 하며, 절 이름은 달마가 숭산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동안 벽을 바라보며 좌선한 것을 기리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도 합니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에는 보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전소되었습니다. 10년 뒤에 우화루(雨花樓)만을 중건한 채 뚜렷한..

인권누리 웹진 제51호 전북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3)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김제 수류성당입니다. 위치는 전북 김제시 금산면 수류로 643번지 입니다. 수류성당은 1888년 6월 전라도 지역으로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M. E. P.)의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요셉) 신부가 고산 빼재공소(현 전북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에 거처하면서 신자들을 찾아 순방하다가 1889년 5월 제7대 조선대목구장 블랑(J. Blanc, 白圭三 요한) 주교의 허락 아래 자신의 거처를 금구현의 배재(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로 이전함으로써 ‘배재성당’으로 설립하였습니다. 이후 베르모렐 신부가 1893년 4월 서울의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교수로 전임되면서 조조(M. Jozeau, 趙得夏 모이세)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으나..

인권누리 웹진 제49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1)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여산 숲정이 성지입니다. 위치는 익산시 여산면 영전길 14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전북에는 익산시 여산 숲정이와 전주 숲정이가 있습니다. 천주교전주교구의 제2성지라고 불리는 여산(礪山)은 천주교 전래가 다른 지역보다 앞섰고 또한 박해의 역사가 아주 깊습니다. 1868년에 무진년에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여산군의 속읍인 고산, 진산, 금산 등에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형장인 숲정이와 장터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여산의 순교 사적지로는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던 ‘여산 동헌’, 동헌 옆의 ‘옥터’와 신자들이 백지사 형을 받았다고 전해지는 동헌 앞마당의 ‘백지사터’, ‘배다리’, ‘뒷말 교수형터’, 순교자들이 참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서쪽 ..

인권누리 웹진 제48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50)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익산 왕궁리 유적지입니다. 위치는 익산시 왕궁면 궁성로 666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왕궁리유적지는 미륵사지와 함께 공주, 부여의 백제역사유적지구라는 이름으로 2015년 7월 8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주제어는 ‘백제왕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왕도와 관련된 왕궁과 사찰, 방어시설인 성곽, 왕릉 등 8개 유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왕궁리유적지는 백제 왕궁으로서는 처음이자 유일하게 확인되었습니다. 왕궁리유적지에 가보면 국보 제289호, 왕궁리 5층석탑을 비롯한 유적지 일대와 왕궁리유적전시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왕궁리의 중심부에 위치한 왕궁리 5층석탑은 관련 문헌자료가 없어서 조성 내력이..

인권누리 웹진 제43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5)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5)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옥구향교입니다. 옥구향교는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옥구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 이곡리에 처음 지었고, 인조 24년(1646)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습니다.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옥구향교 대성전(沃溝鄕校 大成殿)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9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한국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인권누리 웹진 제38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0)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0) 이번호의 역사문화유적지는 위봉산성, 위봉사 ,위봉폭포 입니다. 위봉산성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산 7-4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위봉산성은 숙종 원년 1675년부터 1682년사이에 쌓았고, 순조 8년 1808년에 고친 성입니다. 돌로 쌓은 대규모 산성으로 둘레는 약 8.6km 높이는 1.8m에서 1.6m에 해당합니다. 산성은 보통 전란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시설 입니다. 그러나 위봉산성은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이성계의 어진과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를 옮겨서 보호하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산성 안에는 행궁을 만들었으며 위봉사. 장대, 군기고등도 설치하였습니다. 전주가 동학농민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 이성계어진과 위패를 이곳에 가져왔습니다...

인권누리 웹진 제36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38)

이번호의 인권역사 유적지는 완주군 불명산과 화암사입니다. 화암사(花岩寺)는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 시루봉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화암사길 271번지입니다. 화암사 창건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현재 남아있는 에 의하면 통일신라 때 원효와 의상대사가 이 절에 머물며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적혀있습니다. 완주 화암사 중창비는 1425년(세종 7)에 성달생(成達生)이 절을 중창하고 기념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이 때 3칸의 불전을 매우 장려하게 짓고 차례로 승당(僧堂), 조성전(祖聖殿)등 여러 건물들을 완성하였는데 당시 지은 3칸 불전이 극락전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정유재란 때 피해를 입고 1605년에 중건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

카테고리 없음 2021.12.20

인권누리 웹진 제35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37)

이번호의 인권역사 유적지는 진안 마이산의 탑사입니다. 위치는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367에 있습니다. 마이산은 에 의하면 조선 태종이 남행하여 이 산 아래를 지나다가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마이산 동쪽 봉우리를 수마이봉, 서쪽 봉우리를 암마이봉이라고 부릅니다. 탑사는 암마이봉 수직벽이 올려다보이는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탑사를 건립한 이는 처사 이갑룡입니다. 그는 크고 작은 돌을 쌓는 방식으로 생전에 108기의 탑을 쌓았다고 합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80여기의 탑이 남아있습니다. 이갑룡은 유,불,선 등 3교에 바탕을 둔 용화세계 혹은 미륵세계를 꿈꾸었다고 합니다. 탑사에 쌓은 108이라는 숫자는 속세의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이..

인권누리 웹진 제33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35)

이번호의 인권역사 유적지는 정읍 태인에 에 있는 호남 성리학의 대가 일재(一齋) 이항(李恒)선생에 관한 유허비와 남고서원, 그리고 이항 선생 묘비입니다. 유허비는 정읍 태인 태서리 399-1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일재 이항 선생은 1499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1538년 정읍 태인으로 내려와 40년간 수많은 유학자를 가르치다가 1576년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일재 선생의 가르침으로 수많은 호남 의병이 일어났고 그 중 한명이 김천일 장군입니다. 선생은 1539년 정읍 칠보산 아래에 서재를 세우고 강학소를 운영하였는데, 항상 일자(一字)의 액자를 붙여 놓아 세인들이 이 서재를 일재(一齋)라 불렀습니다. 일재 이항(李恒)선생은 학문을 크게 이루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힘과 재주가 놀라웠다 합니다. 보림사..

웹진 제32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34)

이번호의 인권역사 유적지는 전주 초록바위입니다. 초록바위는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 산 1-9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초록바위는 원래 남부시장 앞 전주교를 넘으면 전주천 쪽으로 내밀어 있는 산줄기를 말하며 지금은 길이 생겨 끊겼지만 전주천에 연결된 낭떠러지였습니다. 그 모체격인 곤지산은 조선 말 동학교도들의 처형장으로, 1866년 병인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의 아들 남명희, 홍봉주의 아들을 초록바위 위에서 전주천으로 밀어 수장시켜 처형한 곳입니다. 곤지산은 싸전다리 건너 오른쪽에 위치한 봉우리입니다. 곤지산은 북쪽의 건지산에 대응하는 남쪽의 봉우리라는 의미였고, 전주부성 북문과 풍남문을 잇는 곳으로, 곤지산에 올라가면 전주시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습니다. 곤지산과 초록바위를 "공수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