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누리 113

[수냐와 함께 하는 행복연습] <39> 산책하면서 원숭이 마음 길들이기

가을은 산책하기에 정말 좋은 계절입니다. 따스한 햇살과 아름다운 단풍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이번 주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원숭이 마음은 원숭이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뛰어다니는 것처럼, 마음이 과거 생각, 미래 생각을 하면서 후회와 불안, 분노를 만들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원숭이 마음을 길들이지 않으면 고통이고, 원숭이 마음을 길들이면 평화가 옵니다. 산책하면서 원숭이 마음 길들이기 연습은 시각, 청각, 후각 등을 사용해서 마음을 현재의 순간으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자연의 품에서 걷고, 자연을 만날 때는 지금 이 순간에 온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마음이 자신을 떠나서 방황하지 않도록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생각을 멈추고 보고, 듣고, 냄새 맡는 감각에 집중해 봅니다. 우리 마음은 ‘생각’이라..

인권누리 웹진 제43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전북공무원 인권정책과 인권의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6) 9. 장애를 이유로 받는 차별 장애로 인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도청, 정읍 각 1명으로 총 합은 2명으로 0.38%입니다. 약간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도청, 군산 각 4명, 고창 3명, 전주, 익산, 정읍, 부안 각 2명, 남원, 완주 각 1명으로 총 합은 21명으로 4.03%입니다. 매우 심각하다와 약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을 합산하면 521명 중 23명으로 이는 4.41%입니다. 보통은 26.30%, 양호는 31.29%, 매우양호는 37.24%를 합산하면 68.52%입니다. 따라서 장애로 인한 차별은 심각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애에 의한 차별을 성별로..

인권누리 웹진 제43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5)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5) 이번호의 인권역사문화유적지는 옥구향교입니다. 옥구향교는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입니다. 옥구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 이곡리에 처음 지었고, 인조 24년(1646)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습니다.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옥구향교 대성전(沃溝鄕校 大成殿)은 1984년 4월 1일 전라북도의 문화재자료 제9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한국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인권누리 웹진 제41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3)

이번호의 역사 유적지는 돼재성당 입니다. 위치는 완주군 화산면 승치로 477번지 입니다. 돼재성당은 1886년 한불조약으로 고산지역의 성당이 세워졌는데 1895년에 완공되었습니다. 돼재성당 조성기에 그 근처에는 1891년 신유박해 이후부터 박해를 찾아 전국 각처에 몰려든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병인박해 때에는 이 지역의 교우촌이 무려 56곳이나 될 정도로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1893년 비에모 신부가 단층 5칸짜리 한옥으로 전국에서 두번째로 성당을 세웠고 이곳이 바로 돼재성당입니다. 돼재성당은 한강 이남의 첫 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입니다. 그러나 성당은 한국전쟁때 국군에 의해 소실 되었고 전쟁 후 1953년 임시로 공소 건물을 지었습니다. 돼재성당은 천주교 신앙의 자유의 본산지임을 알 수 있습..

인권누리 웹진 제41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전북공무원 인권정책과 인권의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4) 5.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도청 2명, 군산 2명, 김제, 고창이 각 1명입니다. 총 합은 6명으로 1.15%입니다. 약간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도청 7명, 군산 6명, 고창, 정읍 각 5명, 김제 4명, 전주, 부안 각 2명, 무주, 익산, 임실, 진안, 남원 각 1명입니다. 총 합은 36명으로 6.91%입니다. 매우심각하다와 약간 심각하다는 응답자를 합산하면 521명 중 42명이며 8.06%입니다. 보통은 33.40%, 양호는 26.68%, 매우양호는 30.52%입니다. 이를 합산하면 57.20%입니다. 따라서 비정규직..

인권누리 웹진 제40호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2)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2) 이번호의 역사 유적지는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 입니다. 완주군 삼례읍 신금리 417 - 3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농민들과 동학도들이 잘못된 사회를 바로잡으려고 일으킨 구국의 저항운동 입니다. 완주군은 특히 삼례봉기를 비롯하여 대둔산 최후 항쟁기까지 동학농민혁명군의 숭고한 정신과 넋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고장입니다. 1895년 2월 대둔산에서 고산지역농민군이 최후까지 항쟁하였고, 대둔산 최후의 항쟁터는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보존된 동학농민군 전쟁 유적지 입니다.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는 전북 고부에서 시작된 농민혁명이 전주성 입성 후 해산하였습니다. 그후 청 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자 국권 수호를 위해 농민들이 삼례에서 봉기하였습..

인권누리 웹진 제39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1)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1) 이번 호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는 웅치전적지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웅치전적지는 완주군 소양면 신천리 산 18-1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웅치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의 전적지로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웅치전적지는 선조 25년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맞서 싸웠던 격전지 입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40여 일 만에 한양, 평양, 개성이 함락되고,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공격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때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방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왜군은 육로를 통하여 침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왜군은 창녕에 있다가 남원으로 들어간 다음 전주를 공격하려고 하였..

[수냐와 함께 하는 행복연습] <35> 행복한 소통 - 나 전달법

의사소통이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이 잘 되면 행복하고 사랑이 솟아납니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면 고통스럽고 관계갈등이 생깁니다. 소통을 잘 하는 능력은 행복한 인간관계를 위한 삶의 기술이므로 평생토록 갈고 닦아야 할 자기수련의 덕목이라 할 것입니다. 소통을 잘 하려면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감정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 되도록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분이 나쁠 때는 상대방을 공격하거나 비난하여 본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분노를 유발하지 않고 나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으로 전달법이 있습니다.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상대 탓도 있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잘 전달하지 못해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

인권누리 웹진 제39호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야기

인권누리에서 불어오는 인권바람이야기 2022년부터 인권에 관한 정보나 관련 자료를 매주 회원분들과 유관기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6개월 정도 운영할 계획이오니 많은 관심과 비판을 부탁드립니다 전북공무원 인권정책과 인권의식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2) 1. 남자 또는 여자라는 성별을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매우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이 도청, 5명, 군산 2명, 고창 2명 진안 1명 익산 1명 정읍 1명으로 나타났습니다. 총합은 12명으로 2.3% 입니다. 약간 심각하다고 응답한 사람은 도청 17명, 군산 12명, 정읍 8명, 고창 7명, 익산 6명, 부안 4명, 남원 4명, 김제 3명, 전주 2명, 진안 1명, 무주 1명 등 65명입니다. 이는 12.5% 입니다. 매우 심각과 심각을 합..

인권누리 웹진 제38호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0)

전북의 인권 역사 문화 유적지(40) 이번호의 역사문화유적지는 위봉산성, 위봉사 ,위봉폭포 입니다. 위봉산성은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산 7-4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위봉산성은 숙종 원년 1675년부터 1682년사이에 쌓았고, 순조 8년 1808년에 고친 성입니다. 돌로 쌓은 대규모 산성으로 둘레는 약 8.6km 높이는 1.8m에서 1.6m에 해당합니다. 산성은 보통 전란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군사시설 입니다. 그러나 위봉산성은 유사시에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이성계의 어진과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한공의 위패를 옮겨서 보호하라는 목적이 있습니다. 산성 안에는 행궁을 만들었으며 위봉사. 장대, 군기고등도 설치하였습니다. 전주가 동학농민군에 의해 함락되자 태조 이성계어진과 위패를 이곳에 가져왔습니다...